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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2 11:27

ETC 14 : 또, 단종되는겁니까.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의 2007년 6월 5일자 기사, 「최근 25년간 사라진 25가지」를 인용한 국내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그 중 1위는 '실내흡연'이라고 합니다.  평소 이와 같은 '특정 언론의 자체적인 선정 기준'에 의한 기사를 볼때마다 별로 공감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1988년도만 하더라도, 어린 학생들이 잔뜩 몰려있는 교실 한 구석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는 남자 선생님들의 모습은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이었거든요.  실내흡연이 흡연자들의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여지던 그 시절, SF영화에서나 언급되던 2000년대에 상황이 반전될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 주의사항

이 글은 흡연자의 관점에서 본 '담배'에 대한 글입니다.  담배를 피우시지 않는 분들을 위한 배려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글인 동시에,  현재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쓴 내용 또한 아니라는 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담배라는 기호품에 있어서 전 제 나이 또래의 흡연자들로부터는 '남들이 다 피우는 말보로나 던힐을 피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흡연자들에게는 '흡연자이기 때문에' 양쪽에서 공격받는 신세다 보니...









ETC 14  :  또, 단종되는 겁니까.




2001년 1월 31일에 세가가 DC 사업을 포기. (드림캐스트는 2000년 5월에 구입)
2002년 3월,  SK의 PC통신 넷츠고 사업 중지. (넷츠고는 2001년 1월에 가입)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2년 연속으로 제가 좋아하던 특정 기업의 서비스 상품들이 차례차례 사라지면서 저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거, 내가 좋아하기 시작하면 다 사업 때려치우거나 문 닫는건가?'  그럴듯한 말로 표현했을때 「머피의 법칙」, 주위 지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마이너한 취향 덕분에 조만간 중지될 서비스만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신청하는 능력의 소유자 (그래 아예 욕을 해라)」라는 농담의 주인공이 되는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거든요.  문제는 그게 담배에도 적용이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KT&G의 '도라지' & '도라지 연'

※ 왼쪽은 2003년 6월 30일부터 KT&G가 발행하기 시작한 새로운 '도라지' 브랜드 담배, 「도라지 연(然)」 // 오른쪽은 이전부터 나오다가 '도라지 연'의 출시로 단종되는 신세를 맞이한 기존 도라지 담배입니다.  단종을 기념해서 2003년 7월 18일에 찍어둔 사진입니다.  (Nikon Coolpix 950)


88라이트를 애용하고 있던 제가 도라지로 노선을 갈아타게 된 시기는 2000년 초반의 일로, 그전까지 '독한 담배는 그만 피우고 좀 더 순한 담배를 피워라'라는 아버님의 명을 받들게 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던게 사실입니다.  천원도 안되는 가격에 구입이 가능했던 88라이트 (2000년도 가격 900원)와 달리, 금액을 표시하는 숫자 자리 단위가 다른 도라지 (2000년도 기준 가격 1,100원)는 불과 200원 차이 밖에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갑씩 살때마다 엄청난 손해를 보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게다가 1996년부터 98년 사이에 군생활을 하면서 공짜로 보급받아 피우던 88라이트에 익숙해져있던 저로서는 도라지가 자랑하는 특유의 냄새와 '고려은단'에 불을 붙여 피우는 듯한 그 느낌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왜 아저씨 담배를 사서 피우는 고생을 하고 있냐"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고 다녔지요.  「부모님이 권해주신 담배거든.  효도해야지.」


** 저 대답 덕분에 별명이 하나 더 늘어버렸던 사실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콩가루 집안 아냐!'


집에서는 도라지를, 밖에서는 평소처럼 88라이트를 피우는 이중생활이 계속될 무렵, 2001년이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국민들의 보건과 복지향상 보다는 국민연금을 말아먹는데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담배값 인상안이 통과되면서, 담배가격이 다시 올라버린겁니다.  「담배 가격 인상은 금연에 도움이 된다」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식 발상을 수시로 써먹는 정부도 문제였지만  -  이건 휘발유값 인상이 에너지 과소비를 막는다는 정신나간 생각과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당시 88과 도라지의 가격인상폭이 달랐다는 데 있습니다.  88라이트의 한 갑당 판매가격이 1400원으로 뛰어버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라지는 1100원에서 1300원으로 인상폭이 200원에 그치는 '사건'이 벌어진겁니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흡연자들이 대거 양담배 시장으로 이탈할 것을 우려한 한국담배인삼공사 (현재의 KT & G)의 잔머리가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KT & G 와 담배 가격에 대해 (본문과는 상관없는 내용입니다) *********

KT&G 로고

※ 아무리 이 친구들이 21세기를 맞이한 기념으로 기업 로고를 교체하면서 '한국의 미래 그리고 세계화'를 외쳐본들, 그 본질은 '한국담배인삼공사 (Korea Tobacco & Ginseng)'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닌텐도가 본래 화투 제조를 업으로 삼고 있었으며, 소니가 그 시작은 백열전구 공장이었고, 호신용 권총 제작사인 미국 스미스 & 웨슨社 (Smith & Wesson)가 사실은 대인명 살상용 무기 제조 공장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기업이미지 통합 작업 (Corporate Identity)이 정말로 필요했던 곳은 현재의 '한국 건강 관리 협회 (舊 사단법인 한국 기생충 박멸협회)' 정도였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말이죠.  어렸을때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내일은 채변봉투 잊지 말고 가져와라" 라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면, 당신은 '한국 기생충 박멸협회'의 주요 업무 중 하나를 경험해본 사람입니다.


담배가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흡연자들 스스로도 인정하는 문제지만, 그 전에 금연을 권하는 시민단체들과 국립암센터는 대한민국의 이중적인 담배정책에 먼저 태클을 걸 필요가 있습니다.  2007년 6월 현재 한갑당 2000원에 팔리고 있는 디스 (THIS)의 가격을 예로 들어볼까요.


1. THIS 한갑 가격에 포함된 조세  :  1,139원

  • 담배소비세 641원 - 담배가격의 32%를 차지합니다.  간접세 만세.

  • 지방교육세 321원 - '내가 담배 한 대 피울 동안 너는 글을 쓰거라'

  • 부가가치세 (V.A.T) 177원 - 노코멘트.


  • 2. THIS 한갑 가격에 포함된 부담금  :  376원

  • 건강증진 기금 354원 - 여러분의 담배 구입이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 엽연초생산안정화 기금 15원 - 설마 이 돈으로 담배 재배 농가 대출 사업을 벌이는건...

  • 폐기물 부담금 7원 - 길가에 배치한 재떨이들이나 먼저 치우시죠.  범칙금 부과하기 전에.


  • 3. 그 밖의 기타 가격  :  485원

  • 제조원가 + 공급자 마진 285원 - 공급자 마진을 200원으로 산정하면 제조원가는 100원도 안됩니다.

  • 판매상 마진 200원 - 담배판매 허가를 받은 소매상 (편의점 포함)에 돌아가는 이윤.



  • 디스 한 갑 가격 2000원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6% (1515원)에 달합니다.  특히 담배 판매를 통해 매년 거둬들이는 세금 약 7조원 중 70~90%에 해당하는 금액이 의료보험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동원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라는 단어를 넘어서 할 말을 잃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병주고 약주고도 정도껏 해야죠.


    결국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태생 자체가 기호품이었던 담배를 생필품의 일부로 편입시킨 다음, 조세저항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엄청난 간접세를 담배에 부과하여 손쉽게 재정을 확보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 자신에게 있습니다.  TV에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강조하는 공익광고를 내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담배로 벌어들인 수입을 가지고 한해 예산을 설계하고 있는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금연을 위해 담배에 추가되는 부담금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그 돈을 건강보험 적자를 메꾸는데 쓰는 보건복지부나, 조세의 형평성을 강조하면서 보건복지부가 몽땅 들고 가는 돈을 노리는 재정경제부나 매한가지입니다.  


    일단 예산을 편성할 때부터 전체 국민 중 불특정 다수를 잠재적인 흡연자로 규정하고, 이 사람들이 올려줄 담배 매출액을 계산하는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찍자는 겁니까 뭡니까.  만약 당장 내일이라도 저를 포함한 다수의 흡연자들이 담배 구입을 중단하면 무슨 수로 국책 사업을 진행할 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경제력의 차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은 간접세를 부담하는 것은 민주주의 이념에는 부합될 지 몰라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자장가를 부르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는 위기의식을 정부 관계자들이 늘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준법 + 투쟁」처럼, 언밸런스의 극치를 자랑하는 단어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원래 하나의 단어였던 것 처럼' 사용되는, 비상식적인 대한민국에서 벗어나보자는 이야깁니다.  (준법행위가 투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달리 말해 편법이 판을 치는 사회라는 뜻입니다.  애석하게도.)  


    *********************************************
      


    도라지 단종 기념 사진 두번째


    죄송합니다.  글을 쓰다가 그만 흥분해버렸네요.  한 갑당 1400원으로 폭등한 88라이트에 비해 200원이나 싼 도라지의 가격 경쟁력은 제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일편단심 88' 이라는 가치관을 뒤집어버렸습니다.  마침 도라지만의 특이한 맛  -  피워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  에 익숙해지고 있던 터라, 적응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원의 차이를 인정하고 도라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후, 같은 흡연자들 사이에서도 저는 외계인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사람들 답지 않게 4~50대 장년층이나 피울법한 도라지를 피운다는 점과, 반경 10m 이내에 있는 사람들까지 '누군가가 도라지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도라지 특유의 향이 절 왕따의 길로 몰고 간 겁니다. OTL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었지만, 남들이 다 하는 스타크래프트 대신 드림캐스트를 붙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거리가 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절 기피할 이유를 저 자신이 스스로 제공한 셈이었죠.  제 취향이 본격적으로 '마이너리그'를 달리게 된 것도 이 시기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우리나라 전체가 월드컵의 열기로 달아오른 2002년, 담배값 인상안이 다시 국회를 통과하면서 도라지는 전보다 100원이 오른 1300원에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백원만 오른게 불행 중 다행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수없이 하며 아무 거리낌 없이 도라지를 피워대던 가운데 시간은 흘러흘러 2003년 7월이 되었고, 어느새 사람들이 저와 도라지를 동일시하는 모습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기...  도라지는 새 브랜드 '도라지 연(然)' 이 발매된 2003년 6월 30일을 기점으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운명에 처합니다.  



    이번에는 88 디럭스 마일드가 단종되었습니다.

    ※ 왼쪽이 2007년 6월을 기해 생산이 중단된 88 디럭스 마일드 // 오른쪽은 앞으로도 계속 생산될 88 라이트입니다.  도라지 단종 이후 88 디럭스를 대체 담배로 선택했던 제게는 이번이 두번째로 맞이하는 '담배와의 이별' 입니다.


    '도라지 연 (1800원 : 2003년 발매 당시 기준가격.  2007년 6월 현재는 2,300원)' 대신 88 디럭스 (1400원 : 2003년 7월 기준 가격.  2007년 6월 단종되기 직전의 가격은 1900원)를 대체 담배로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가격이었습니다만 , 맛이 예전 같지 않았다는 점 역시 문제로 작용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자신이 선호하는 담배를 바꾸지 않는 흡연자들의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한국의 미래와 세계화를 책임지는 기업 (KT & G)'이 이런 엄한 짓을 한 이유는 단 한가지.  도라지를 가장 많이 구입하는 장년층들이 새로 출시된 '에쎄'를 선택하기 시작하면서 도라지의 판매량이 줄어들자, 담배값을 올리는 김에 도라지 담배갑 디자인 뿐만 아니라 '맛' 까지 손을 댄겁니다.  제품 출시 이후 줄곧 장점이자 단점으로 지적되어왔던 '너무 강렬한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기존 도라지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매출이 상승할거라 믿은거겠죠.  그런데 이 해결책이 오히려 제게는 역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신제품의 성공 여부는 둘째치고, 몇갑을 피워봐도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거든요.  게토레이를 애용하던 사람이  '2% 부족할때'를 마시고 느끼는 밋밋함과 비슷하다고 해두겠습니다.


    「가격이 오른 것도 억울한 마당에 맛까지 변해버린 제품을 살 필요는 없다」
    이게 제가 도라지연을 포기하고 88 디럭스 마일드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경고문구가 참 거시기합니다

    ※ '당신의 자녀를 병들게 합니다' 라는 경고문구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애들을 생각해서 참아달라는 그 깊은 속뜻을 모르는건 아닙니다만, 이상하게 저 문장 앞에 생략된 말이 있는 것 같군요.  「지금 담배를 피우고 있는 당신은 이미 글러먹었으니 피우던 담배 계속 피우면서 납세의 의무나 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담배는」 당신의 자녀를 병들게 합니다.  혹시 이게 원문 아니었습니까?


    한때 '88멘솔' 등 다양한 라인업을 자랑하던 88 브랜드는 이제 88라이트와 88디럭스 마일드 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88디럭스가 단종되었으니 남아있는 건 88라이트 하나 뿐이네요.  나이드신 분들을 위해 소량만 유통되던 한 갑당 200원짜리 '솔' 담배가 사라진 지금, 88라이트는 2007년 현재 국내 최저가 브랜드를 대표하는 마지막 담배가 되었습니다.  이걸 다르게 표현하자면 88라이트 역시 앞으로 2~3년 이내에 단종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겠죠.


    가격은 1900원(2007년)으로 동일한 88라이트와 88디럭스.  허나 두 담배는 크기와 발매시기, 그리고 구성 성분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두 담배의 차이점에 대해 짚어보고 가겠습니다.


    규격  :  라이트 (84mm / 일반 담배 길이와 동일)  vs  디럭스 (100mm)
    발매시기  :  라이트 (1987년 4월 1일 / 88올림픽을 기념하는 담배였습니다)  vs  디럭스 (1990년 5월 1일)
    필터 & 향  :  라이트 (3중 복합 **과립필터)  vs  디럭스 (3중복합필터, 발삼향)
    구성성분  :  라이트 (타르 8.5mm / 니코틴 0.90mm)  vs  디럭스 (타르 7.5mm / 니코틴 0.70mm)

    ** 88라이트를 피우면서 실수로 필터부분을 질겅질겅 씹어보신 분은 아마 경험해 보신 적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필터부위에 과립형태로 들어있는 그 작은 알갱이들이 혓바닥을 굴러다닐때의 끔찍한 느낌.  도라지로 담배를 바꾸면서 그 씁쓸한 기억과 안녕을 고했기에 망정이지, 무의식중에 필터를 씹는 습관을 가진 저 같은 사람에게 88라이트 필터는 정말 무서운 물건이었습니다.



    88디럭스를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


    위의 사진이 제가 88라이트 대신 디럭스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과 타르의 함량이 88라이트가 디럭스보다 조금 더 많습니다.  흡연자의 입장에서 놓고 봤을때 최후의 선택이면서 지상 최대의 결심이라 할 수 있는 '금연'을 해야 할 시기가 왔을때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고 해두겠습니다.  정확한 연구결과가 나와있는 것은 아니지만, 니코틴 함량이 높은 담배를 피웠던 사람일수록 금연하기가 힘들다는게 제 의견입니다.  사람들이 담배를 지속적으로 피우게 되는 원인은 바로 니코틴 중독 때문이니까요.  (※ 타르는 발암물질입니다.  중독성 보다는 해악을 더 끼치는 존재죠)  


    실제로 제가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때 손에 잡았던 제품은 다름아닌 말보로 레드.  니코틴 함량으로 따지면 시중에 유통되는 담배 중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녀석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이 담배 저 담배를 찾아 방황하던 20대 초반의 시절에는 말보로 레드보다 약한 담배를 피울 경우 평소보다 흡연량이 배 이상 늘어났던 기억이 납니다.  확실히 니코틴 함량이 낮은 담배를 피울수록  -  아예 피우지 않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만  -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높습니다.  우리 몸이 요구하는 니코틴 양이 적을수록 담배 생각을 확실히 끊어버릴 수 있거든요.  


    좌우지간 88디럭스 마일드를 단종시키기로 한 KT & G의 이번 결정은 다음의 두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첫번째로 저가 담배를 하나 둘씩 시장에서 철수시킴으로써 자신들이 주력하고 있는 2천원대의 중저가 담배 수요를 늘리려는 수익성 증대 계획의 일환  //  두번째로 제조과정에서 88라이트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88디럭스를 생산라인에서 퇴출시키고, 공급자인 자신들의 편의성을 확보하기 위해...  KT & G의 시각으로 봤을때 88라이트보다 수요가 많지도 않으면서 길이가 16mm나 더 길고, 니코틴과 타르의 함량까지 줄이기 위해 신경을 써야 하는 88디럭스는 분명 '눈의 가시' 같은 존재였을겁니다.  판매가격도 똑같은 녀석한테 신경을 더 써야한다는건 제작자 입장에서 여러모로 귀찮은 일 아니겠습니까.  


    이 친구들 마음 같아서는 88 브랜드 전체를 없애버리고 싶었겠지만, 88라이트에 충성을 다짐하는 장년층 수요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단종의 칼날을 고정 소비 계층이 축소될대로 축소된 디럭스쪽으로 대신 향한 것 뿐입니다.  한꺼번에 없애버렸다가는 반발 심리만 자극할게 뻔하거든요.  그러므로 88 라이트를 피우는 사람들도 안심할 처지는 못됩니다.  장기적으로는 88라이트 역시 단종될 운명이라는 건 확실하니까요.  다만 문제는 그게 언제가 되느냐 하는 겁니다.  담배값 인상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기다리느니, 차라리 자사 제품들 중 가장 수익성이 낮은 녀석을 직접 가지치기 하는 쪽이 훨씬 손쉽고 간편하다는 사실을 KT & G 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 88라이트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88디럭스가 단종되었다고 88라이트로 가봤자 소용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진퇴양난이 따로 없는거죠.  그렇다면 남은 건 완전히 다른 클래스의 담배로 업그레이드를 하던가, 아니면 애초부터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도록 **금연을 하던가 둘 중 하나입니다.

    ** 자신의 건강을 위해 금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시장에 자신이 원하는 담배가 없다는 이유로' 금연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건 블랙 코미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목적이 영 아니다..라고나 할까요.  결과를 떠나서 말입니다.  뭐, 이미 드림캐스트로 사전 연습도 충분히 해본 만큼, 못 할 이유 또한 없다는 사실이 제게는 더 슬픈 일이군요.




    좋아하던 게임기가 시장에서 퇴출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2001년.
    좋아하던 PC통신이 서비스를 중지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던 2002년.
    애용하던 도라지가 단종된다는 소식에 분개했던 2003년.
    지난 3년간 잠잠하다가 결국은 88디럭스까지 단종되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2007년.


    2007년, 마지막 DC소프트의 발매와 GD-ROM 생산 중지 뉴스, 거기에 세가의 새턴 / 드림캐스트의 애프터서비스 중지 발표와 때맞춰 흘러나온 88 디럭스 단종 소식은 본의 아니게 특이한 취향을 자랑하는 제게 '고집 그만 부리고 남들처럼 사는건 어때?' 라는 무언의 권유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일도 아닌 취향을 다른 사람들 기준에 맞춘다는게 어디 쉽나요.  그저 난감할 따름입니다.  세상에 나온 이상, 끝이 있다는 진리를 굳이 이런식으로 알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죠.  이제는 특정 제품이 단종되면 그에 대한 '대체 물품'을 찾는데도, 뭔가에 적응할 만 하면 그 대상이 현실을 떠나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는걸 손놓고 바라보는 것도 지쳤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쓰려고 결심하게 된 동기를 밝히며 슬슬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좋아하는 물건 중 하나가 또 기억 너머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써 본 글입니다.  이 글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본문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2003년 7월 18일  NATE GUS에 일부 내용 작성.
    2007년 6월 22일  최종수정 / Dricas.Net 에 게시.

    Dricas.Net 운영자 강군





    ** 덧붙여서


    어쨌거나 흡연은 몸에 안 좋아요.



    BGM  :  PS1버전 메탈기어 솔리드 OST 中 「 ENCLOSURE (13번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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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택인
    2007-06-22 17:13
    대상이 뭐든간에 소중했던 존재가 하나둘 사라진다는 건 역시 슬픈 일입니다.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방호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네요ㅜㅜ
    최준희
    2007-06-22 18:19
    임용고사를 준비하고 있다보니 담배값에 지방교육세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얼마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曰 대한민국 교육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면 열심히 담배를 피우면 된다고,,,;;
    강방호
    2007-06-22 20:46
    송택인님 // 감사합니다. ㅠ_ㅠ 솔직히 좋은 소리를 들을만한 글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말씀해주신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강방호
    2007-06-22 20:48
    최준희님 // 그래서 담배가 떨어지면 한석봉 2세를 키운다는 자부심(?)으로 구입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이겠죠. 참고로 지방교육세는 수입품에 붙는 관세에도 포함될 정도로, 부가가치세에 이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세금의 2인자입니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부가세가 면제되는 수입품에도 지방교육세는 웬만하면 다 붙거든요.
    백승훈
    2007-06-22 21:01
    혐연자 입니다. 담배는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전에 이중적인 태도는 정말 이해 할 수 없네요. 세금과 국민건강,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욕심쟁이들 -_-++
    강방호
    2007-06-22 22:55
    맞습니다. 제가 흡연자 입장에서 쓴 글이긴 하지만, 담배는 아예 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 편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가장 열받는 사실은,「금연」하면 모든게 간단히 끝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러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제품을 국가에서 여지껏 팔아왔다는 겁니다. 2002년에 KT & G가 민영화되기 전까지 말이죠. 정말로 그들이 국민건강을 생각했다면, 물가상승을 핑계로 담배값을 찔끔찔끔 올리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예 영국처럼 확 올려버리던가 했겠지요.
    김우석
    2007-07-03 04:14
    최근들어 미국에 이상하게 럭키스트라이크를 구할 수 없는 현상이 있습니다. 미시건 촌 지역이라서 그럴지 몰라도, 담배전문 샵에 부탁을 했는데도, non-filter이외에는 없다고 하더군요. 꽤 맘에들던 담배였는데....최근에는 카멜필터스나 말보로레드로 달래고 있지만, 럭키스트라이크의 만족감을 얻을 수가 없네요. 의외로 미국은 흡연으로 부터 자유로운 분위기입니다. 확연한 개인주의로 인해 너도나도 길거리에서 피는 분위기다보니, 그것을 뭐라고 하지않는 분위기 랄까요...담배가 비싸다보니 토할 것 같습니다만....요즘 이런저런 고민때문에 늘어가는 담배가 부담스럽습니다;;;
    강방호
    2007-07-03 16:15
    non-filter라면, 필터가 없는 담배인가요? 그거 한 번 피웠다간 난리날것 같습니다. ㅠ_ㅠ 카멜은 이상하게 텁텁한 느낌이고, 말보로 레드는 너무 독해서 문제고... 우석님도 답답하시겠네요. 미국의 개인주의야 알아줘야 합니다만, 거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ex: 필립모리스社를 상대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하는 흡연자 가족 소송 등) 이 가능한 미국의 소송 제도도 한 몫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쪼록 고민하시는 일들을 잘 해결하시길 빕니다. 그런데 미국은 담배에 붙는 세금이 과연 가격의 몇 퍼센트를 차지할지, 이게 또 궁금해집니다.
    박형택
    2007-09-27 18:13
    이중적인 세금 등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추석 연휴를 막 마치고 온 입장에서.. 고속도로 톨케이트비용도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포항에서 서울까지 16시간... 고속도로 운행시간 15시간 30분. 주행거리 350km 이게 어디가 고속도로라는 말입니까? 그래도 이용요금은 꼭꼭 받더군요. 한국도로공사에 차량으로 돌진하고 싶었습니다. 추석연휴 톨게이트비용으로 도로공사가 얻은 수입이 100억원을 넘었다고 하던데.. 그 돈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박형택
    2007-09-27 18:13
    그리고, 방호님 덕에 같이 도라지의 세계에 빠져 같이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던 저로서는 그 이후 오직 색깔이 이뿌다는 이유 하나로 맛들인 시마가 단종되고나서 방호님처럼 내가 좋아하면 단종되는 것인가? 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시마가 다시 생각나는군요...ㅠㅠ
    강방호
    2007-09-27 19:57
    형택님. 도로공사에 돌진하시려면 벤츠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차로는 주목받기 어렵습니다. ㅠ_ㅠ 시마.. 진짜 담배갑 디자인에 사용된 컬러 하나는 마음에 들었는데 말이죠. 형택님의 담배 취향도 저만큼이나 마이너리그를 달리고 계시는군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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