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15 03:54
푸르딩딩한 렌즈의 진실
지금으로부터 3년전인 2003년 10월 4일, Dricas.Net 회원이신 구본건님께서 제가 전에 운영하던 드림캐스트 클럽 ONLYDC에 「푸르딩딩한 렌즈가 좋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라는 내용의 질문을 올리신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은 당시 그에 대한 답변으로 올렸던 글을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수정한 내용입니다. 아직까지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서 디스크를 매체로 사용하는 게임기의 렌즈에 대해 고찰한 글을 본 적이 없는 만큼, 이번 게시물은 - ONLYDC에 올렸던 답변을 제외하고는 - 아마 지난번 『게임 디스크 취급시 주의 사항』처럼 대한민국 안의 인터넷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전에 올렸던 글에서 인용한건 단 두장의 이미지 밖에 없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새로 쓴 글이기에 이미 보셨던 분들도 새로운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푸르딩딩한 렌즈의 진실
인터넷, 분명 '정보의 바다'라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네이버 지식 in」과 같은 포털 사이트의 Q & A 서비스까지 가세하면서 불거진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특정 질문에 대한 단순한 답변이 일종의 '모범 답안'으로 확정되고, 이 모범 답안이 인터넷 전체로 확산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저 답변에 문제가 전혀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만약 답변 자체가 잘못된 경우라면 이는 「헛소리를 상식으로 공유하게 되는」상황으로 발전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푸르딩딩한 렌즈' 가 소위 '새삥 렌즈' (신품 렌즈)」라는 알 수 없는 믿음, 이런게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2006년 4월 13일, 우리나라 옥션 사이트에 올라왔던 드림캐스트 매물 중 하나를 화면 캡쳐 했습니다. '푸르딩딩'도 아니고 '푸르탱탱', 렌즈가 푸른색이라는 점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비디오 게이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푸른색 렌즈 신봉론'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요?)
본론에 들어가기 전 먼저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은 디스크를 저장 매체로 사용하는 게임기 중에서 세가 새턴 // 세가 드림캐스트 // 소니 플레이스테이션1 // 소니 플레이스테이션2 // 닌텐도 게임큐브 // 파나소닉 Q // XBOX // HD-DVD 재생용 드라이브를 추가하지 않은 XBOX360 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PS3와 Wii 는 제가 뜯어본 적도 없고, 아직 그쪽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는 관계로 이 이야기에서는 제외시킵니다. 특히 PS3는 기존의 적색 레이저 대신 신 기술인 '청색 레이저'를 사용하는 「허위 마케팅의 선두 주자 소니의 하이테크 블루레이 디스크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DVD 2.0 같은 잡지에서 다뤄야 마땅한 이야기겠죠. 제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의 물건이 아닙니다. 드림캐스트에 목매달고 사는 제 입장을 감안했을때 사실 PS2 이야기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오늘 이 글을 위해 희생된 렌즈가 PS2 렌즈라 어쩔 수 없네요. 그럼 갈까요?
1. 「푸르딩딩 = 신제품」이라는 공식의 기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말을 배울때 가장 난감해하는 것 들 중에는 '주어 (the subject//主語)' 가 생략된 문장들 - 「밥 먹었어?」라는 예문에는 주어 '너는' 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사물의 동작이나 날씨 등을 설명할때도 「It」이라는 주어를 포함시키는게 보통인 웨스턴 피플들은 이런 우리말과 마주치면 당황합니다 - 과, 한국어에서 유난히 발달한 형용사가 있습니다. 가시(!) 색깔이 파란색인 소닉(SONIC)을 놓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거, 무슨 색이야?」라고 묻는다면 최소한 한가지 이상의 대답을 들을 수 있지요. 파랗다 / 시퍼렇다... 게다가 흔히들 '녹색' 계열로 알고 있는 「푸르다」는 형용사는 우리나라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풀의 빛깔과 같이 맑고 선명한 색.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등을 표현할때」라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소닉은 푸른 색이야' 라고도 말할 수 있는게 우리나라 말입니다. 그러므로 「푸르딩딩한 렌즈는 신제품이나 다름없다」는 말은 그 진위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한국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문장이라는 사실을 알아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CASE 1)

지금 보시는 사진은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품 상태가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닌텐도 게임큐브의 렌즈 유니트입니다. 렌즈 확대 사진을 보시면 렌즈 색상이 흰색입니다. 투명하다는 소리죠. 위에서 예로 든 옥션의 '푸르탱탱'한 색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입니다. 렌즈가 허옇게 변한 이유는 잠시 후에 설명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여기에서는 렌즈 색상과 이 렌즈가 '고장난' 상태라는 두가지 사실만 지적하고 갑니다.
CASE 2)

이번에는 고장난 PS2 렌즈 유니트 3개를 나란히 촬영한 사진입니다. 고장난 게임큐브 렌즈만큼 완전히 하얀색으로 변한건 아니지만, '푸르딩딩의 법칙' 에 의거해서 봤을때 저 렌즈들도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구요. 희미하게 남아있는 파란색이 다소 애처롭기까지 한 이 렌즈들 역시 게임큐브 렌즈와 마찬가지로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지금 예로 든 두가지 경우만을 놓고 본다면, '푸르딩딩한 렌즈 = 신제품' 이라는 공식은 참입니다. 고장난 렌즈들이 푸르딩딩한 색과는 거리가 멀고, 하나같이 흰색에 가까운 상태로 변했으니까요. 이로써 '푸르딩딩' 이 어떻게 해서 신품 렌즈와 고장난 렌즈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는가에 대한 답은 나왔다고 봅니다. '피카소'와 같은 용산 등지의 게임기 수리점에 고장난 게임기를 들고 가서 수리를 맡길 때, 보통 수리하시는 분들이 문제가 된 부품을 보여주면서 「이게 문제였어요」라는 식으로 설명을 해주면, 이런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 게이머로서는 그 말만을 듣고 「푸르딩딩한 렌즈 = 신제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그 분야 전문가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니 믿을 수 밖에요. 이런 식으로 시작된 입소문은 점차 여러 사람들을 통해 전파되다가, 나중에는 PC통신의 비디오 게임기 동호회 게시판에서 하나의 '정설'로 정착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게 '푸르딩딩의 법칙'이 우리나라 비디오 게이머들 머리속을 지배하게 된 1차적인 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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